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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과 IT, 그 찬란한 발전의 역사속으로.

Legacy/연구&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8. 15.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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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ndon 2012 Olympic


2012년 7월 27일 부터 8월 12일 까지 펼쳐진 런던 올림픽이 열렸고, 성공리에 막이 내렸습니다. 48억명이 시청을 한 이번 올림픽에서도 많은 기록이 나왔고, 수많은 별들이 지고, 새로운 별들이 탄생을 했습니다. 새로운 탄생을 지켜보듯, 올림픽은 재미있는 이벤트도 있었고, 특히나 많은 가수들이 동원된 이번 올림픽도 이야기 거리를 낳았습니다.




올림픽 데이터 센터, 베이징 올림픽 당시 사용했던 것.


하지만 이런 올림픽에는 IT 기술이 곳곳에 뒷바침을 해 주고 있다는 사실, 아시나요? 올림픽은 뛰는 선수과 관중들 뿐만 아니라 그 기저에는 많은 IT시설이 올림픽의 성공적 운영을 위해서 24시간 운영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기록을 기록하기 위한 시계, 혹은 심판용 카메라 뿐만 아니라, 기사를 송신하고 시청을 위한 수많은 장비가 있습니다. 처음 단순히 신문기사로 송신하던 시대에서 라디오가 등장하고, TV로 송신을 하는 IT의 도전사! 그 숨은 기록을 보겠습니다.



올림픽 IT의 꽃, TV




올림픽에 있어서 IT의 꽃은 TV라고 불리는 중계매체 입니다. TV를 통해서 안방에 중계된 올림픽은 의외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초기에는 신문을 통해서 경기의 일정이 알려졌고, 그 이후에는 라디오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중계를 하였습니다. 1936년 올림픽부터 본격적으로 TV를 통한 중계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당시 베를린 올림픽을 유치한 독일의 정권 독일민족사회주의노동자(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당, 줄여서 '나치(Nazi)'[각주:1]의 프로파간다의 결과물 이기도 했습니다.



마라토너 손기정, 1936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당시 나치는 선전을 쉽게 듣게 하기 위해서 라디오와 TV의 보급을 싼 가격에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각 가정의 TV보급율이 늘어났고 마침 다가오는 올림픽이었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이 TV중계를 하기로 합니다. 허나 이때의 TV중계는 독일 국내(실제로는 베를린과 일부)만 가능한 것이어고 16만 정도만이 시청을 했습니다. 지금의 48억명과는 비교할수 없는 숫자. 다만 라디오중계는 전세계적으로 했습니다.




하나는 흑백, 하나는 컬러중계를 통해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럼 전 세계적인 TV중계는 언제 시작했느냐? 그건 1964년 도쿄올림픽 때부터 가능해졌습니다. 여기엔는 인공위성의 발전을 같이 소개해야 하는데요, 정지궤도 위성인 인텔셋(intelsat)을 통해서 태평양 건너의 위성 중계가 가능해졌습니다. 1936년의 첫 지역중계에서 벗어나 최초로 world wide한 중계를 펼칠 수 있게 된 것이죠.




중계방송의 발전은 현재의 모습으로 볼수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TV의 발전은 흑백을 벗어나 1970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는 컬러로 송출이 되었고[각주:2]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부터 디지털로 하는 HD 중계[각주:3]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TV중계의 시작은 의외로 오래되었네요. 하지만 디지털로 하는 HD중계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느낌이죠?



IT의 또다른 중계, 인터넷





TV중계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되었지만 www이 탄생된지 23년이 된 인터넷은 올림픽에서 늦은 시기에 대뷔를 합니다. 바로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때부터 인터넷이 활용되기 시작했는데, 올림픽 홈페이지를 통해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였다고 하네요. 이때 이미 인터넷 중계가 도입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기술적 문제로 제대로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스트리밍 기술이 그리 발전하지 않았고, 속도도 빠른편이 아니었으니깐요. 저도 당시 학교에 깔린 인터넷을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땐 화질조차 좋지 못했는데...




홈페이지는 1996년 애틀란타때 최초로 만들어졌다.


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중계는 커다란 벽에 부딛히기도 합니다. 바로 중계권이라는 것이죠. 저작권에 민감하지 않는 다면 잘 모르지만 사실 현대의 올림픽의 수익중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중계권입니다. 이런 걸 생각하면 당연히 인터넷에 스트리밍 하는 것은 복잡한 중계권의 문제에 시달리고, 또 소위 말하는 쩐의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이것이 대두된 것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었는데요, 30여개의 사이트가 폐쇠되기도 했다네요. 허나 발전은 막을 수 없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결국 하이라이트 정도만 인터넷에 올리는 것으로 막을 내리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때는 이미 TV보다 인터넷으로 중계를 보는 사람이 더 많아졌고  2012 런던올림픽은 잘 아시다시피 인터넷 중계가 번성하는 시기를 맞이하였습니다. 





특히 런던올림픽에서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가 새롭게 대두되면서 인터넷 중계는 스트리밍 뿐만 아니라 이들 SNS를 통해서도 중계가 되었습니다. 공식적인 계정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올리는 것도 하나의 중계였는데, 다음 브라질 올림픽은 어떤 중계를 하게 될까요?



사진과 기록을 전달하는 마법, 디지털




매번 올림픽을 보면 화려한 사진들이 포털사이트의 신문란에 거의 실시간으로 전송이 됩니다. 이런 사진의 디지털 전송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부터 가능해 졌습니다. 허나 그 이전에도 디지털 전송을 하는 국가들이 있었는데, 바로 일본이 그 대표적인 경우였죠. 1984년 LA올림픽에서 이미 일본 기자들은 다른 나라 기자단들이 필름을 찍고 현상하러 가는 사이 모뎀을 이용해서 전송을 하고 있었다네요. 시간이 중요한 사진전송은 이미 오래전 부터 이용이 되고 있었습니다.





IT기술은 기록의 전송에서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때부터는 모든 경기기록을 디지털로 처리를 하였는데, 이런 처리를 이용해서 더욱 빨리 경기기록을 해외로 전송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정확한 기록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타임키퍼와 점수


올림픽에서 TV다음으로 IT를 생각나게 하는 것은 시계, 즉 타임키퍼입니다. 경기가 끝마쳤을 때 같이 나오는 시계 기록과 스폰서가 매번 나오니 당연하게도 가장 관심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타임키퍼는 후원사인 오메가의 역사와 비슷합니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보이는 오메가는 올림픽을 위해서 많은 기록장치를 개발하게 되는데 이 기록들을 살펴보면 삽질의 역사(?)와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만큼 꽤나 아이디어가 참신했으니깐요.




새로운 기록은 시계없이 불가능했습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부터 오메가가 공식적인 스폰서가 되면서 기록장치를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1/10초 정도로 기록되는 정도였다고 하네요. 하지만 단순히 시계의 정확성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기기가 개발되는데 바로 광전자 눈입니다. 기존에는 사람의 눈으로 스위치를 누르는 방식이었지만, 1948년 스위스 생 모리츠 동계올림픽에서 나온 이 광전자 눈은 적외선이 수신기 발신기 사이를 부딛히는 사이를 기록하는 장비였고 이 때문에 정확한 기록이 가능해 졌습니다.




이게 오메가스코프입니다.


1964년 동계올림픽 부터는 오메가스코프라는 것이 만들어 졌습니다. 흔히 말하는 이때부터 Tv 아래에 뜨는 올림픽 기록이 바로 전송되는 시스템으로 리얼타임으로 전송이 되었기에 중계를 받는 시청자들이 바로 확인이 가능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발전한 타임키퍼의 역사는 수영에서 특히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사실 수영장을 가 보면 알지만 광전자 눈을 설치하기 힘듭니다. 이때 만들어진게 터치패드입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선보인 수영경기장의 터치패드는 그 이전 심판이 직접 눈으로 스톱워치를 누르던 시대를 벗어나 선수가 직접 터치패드에 압력을 가함으로서 확실한 경기기록을 얻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2에 사용된 오메가스코프


이 타임키퍼가 빛을 발한 경기는 1972년 윈헨 올림픽에서 였는데, 당시 개발된 1/1000 초단위 로 기록을 하는 타임키퍼 때문에 메달의 주인이 바뀌고 규정이 바뀌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400m혼영의 스웨덴 선수와 미국선수가 동시에 터치패드를 누르고 기록은 4분 31초98이라는 동시의 기록이 새워집니다. 허나 타임키퍼의 분석을 통해서 스웨덴 선수가 0.002초 더 빨리 들어왔다는 것을 파악하고 스웨덴 선수를 우승으로 발표를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FINA에서는 1/100초 까지만 기록을 측정하는 것으로 규정을 바꾸게 되었다는 사실...



올림픽의 빅데이터,





60기가 바이트의 데이터가 초당 전송되고 지난 올림픽 때보다 30%더 많은 데이터가 생성되었습니다. 2012 런던올림픽을 보면 올림픽에서 데이터를 다루는 기술이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데, 아테네 올림픽때만 해도 총 사용된 서버는 15000대였다고 하니 8년이 지난 런던올림픽에서는 얼마나 많은 서버가 사용되었을지 짐작이 갈 듯 합니다. 매 올림픽 마다 빅데이터와의 전쟁이었고 이번 올림픽도 초당 만들어지는 데이터와 HDTV의 중계데이터 그리고 새롭게 대두된 SNS를 통한 데이터처리를 생각해 볼수 있죠.



경기는 전자기기에서 멈춘다. 경기장비들



선수들의 정확한 경기분석을 위해서 동원되는 것은 카메라뿐만이 아닙니다. 심판의 판정을 위한 카메라 기술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장비입니다.




ⓒ TK뉴스



아마 이번 런던올림픽을 통해서 잘 열려진 IT기술은 전자호구입니다. 경기의 점수채득방식도 변화했지만 이 전자호구를 도입하면서 일정 압력이하의 파괴력은 점수로 얻어지지 않고, 또 정확한 점수를 얻을 수 있었죠. 한국선수들이 대거 탈락하긴 했지만 반대로 이 때문에 판정시비가 줄어들고 더 재미있는 태권도가 되었다는 평입니다. 실제로 이 때문에 9대 3의 상태에서 대 역전극이 펼쳐질 정도였습니다. 




ⓒ 연합뉴스


역시 펜싱도 그렇습니다. 펜싱은 이미 예전 전자기술이 없었을 때 많은 판정시비가 있었고 메달을 받은 사람이 양심상 메달을 대신 주는 일도 있었을 정도로 심판의 눈이 중요했었습니다. 그러나 전자기기의 발달로 먼저 찌른 쪽이 어느쪽인지 명확해 졌고 이 때문에 판정시비는 크게 줄어들었죠. 허나 이번 신아람 선수의 여자 에페 준결승전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IT기술은 시설이 아닌 선수들도 사용한다.


이런 IT기술은 중계나 타임키퍼 그리고 시설에서만 사용을 하는게 아닙니다. 최근들어서 선수들의 기록향상을 위해서 각 국가들은 운동용 기구로 IT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네요. 이제는 단순히 라면과 근성으로 운동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거죠. 




대충 이렇게 생긴거(...)


이번 올림픽만 봐도 호주 사이클 선수단은 3D사이클 프로그램을 런던에 반입을 하여 야외에서 훈련하지 않아도 가상의 훈련코스를 달릴수 있었습니다. 미국 육상선수는 NASA에서 사용하는 런닝머신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간단한 사례를 들었지만 다른 경기들 에서도 IT기술은 무궁무진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차후 나오게 될 올림픽 IT기술


지금의 올림픽 기술만 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 더욱 생생한 화면으로... 4K(UDTV) 실시간 중계







방송기술이 높은  BBC와 NHK NBC에서는 런던올림픽에서 8k급으로 영상기록 하였고 4K로 송출을 하였습니다. 제한적인 방송사들의 움직이었기에 국내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HD(2K)의 시대이후 새로운 기술이 완성되겠네요.


 - 가상으로 보자! 3D 중계



역시 이미 런던올림픽을 통해서 시험중계를 했지만 역시 월드와이드 중계는 아니었습니다. 인프라도 부족하고 아직까지 시청이 간으한 TV도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마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어느정도는 그 효용성이 입증되었으니 차기의 올림픽에서 새로운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것으로 보입니다. 


 - SNS와의 연동성.





이번 2012 런던올림픽으로 들어났듯이 트위터와 Facebook을 비롯한 SNS는 새로운 뉴미디어로 부상을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들 미디어를 이용한 홍보와 사용은 급격하게 증가될 것이기에 더욱 큰 미디어로 다가올 예정인데요, 이제는 단순히 홍보용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용이 될 것으로 생각되지 않을까요?







  1. NSDAP [본문으로]
  2. 다만 한국은 송출 시스템은 컬러였지만, 컬러TV 구입에 따른 계층간 위화감이 조성될수 있다. 라는 이유로 5공화국 출범 이전까지 TV는 흑백이었습니다. [본문으로]
  3. 월드컵의 경우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주관 방송사인 HBS에서 SD로 하였지만, 한국과 일본의 현지 방송사들은 HD중계를 시도했습니다. 로컬이긴 하지만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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