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저녁 친구 모임장소에 나갔었다. 당시 동계올림픽으로 한창 모르익던 때, 기간이 거의 끝나가면서 이야기는 월드컵으로 옮겨갔다. 당연하겠지만 어떻게 응원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초미의 화두로 떠올랐고 나름 가겠다는 친구도 적잖히 있었다. 그중 한명과의 대화내용-
"넌 이번에 남아공에 가기로 했다며?"
"응! 한번은 직접 볼려고. 넌?"
"글쎄..."
"야. 이번에는 좀 구경가는게 좋지 않겠어?"
"그러게 말이다. 가면 좋지. 좋은데..."
"?"
"이번에도 저번과 같은 일이 있으면 어떻하나 싶어"
"크하하. 이번에도 또 그럴일이 있을까? 에이 설마. 너 16년 동안 그랬는데 이번에도? '그런일'은 없을거다."
"없었으면 좋겠다. 크크"
여기서
'그런일'은 다름아닌 마가 꼈는지,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던 것인지 제대로 보지 못한 나의 스토리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본인이 가장 잘 하는 것은 "인생 자학개그"(...)이긴 하지만 실제 발생한 일들을 말한 것이다. 군대에서 월드컵을 맞이하는 일은 겪지 않았지만 아마 이정도면 연륜(!)과 기교가 쌓인
16년의 업보의 세월을 간단하게 언급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뭐 그렇다고 크게 재미있지는 않겠지만....열망하는 이유에 대해서 봐주셨으면 한다.
아마
이 이상으로 월드컵에 대한 열정이 숨쉬는(?) 글이 있을까?
기억0. 1994년 미국 월드컵
유치원때는 월드콘과 월드컵도 햇갈렸다.
(농담아님)
당연한 애기겠지만 어릴때 기억엔 월드컵은 거의 있지 않았다. 그땐 다른거 하기에 바쁜 탓도 있겠지만 아마 월드컵에 대해서 관심이 국민 전체적으로 크지 않을때여서 그런 듯 했다. 미국월드컵이 열리던 1994년 뭔가 축구를 하는 것 같았지만 이게 월드컵이었는지 알기까진 몇년이 흘러서야 알 수 있었다.
암튼 그랬다. 유치원에 있던 시기니 당연하겠지만.
기억1.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1998년 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월드컵이 열리던 시점이었다.
치킨인지 닭과 같은 마스코트가 월드컵을 홍보를 하고 프랑스에서 열린다는 정도 이외에는 아는 것은 없었다. 당시 게임으로는 월드컵의 여파로 인하여 피파98이 인기가 있었고 여러가지로 예선전을 치르고 있던 시기였다. 사실, 예선전은 그럭저럭 볼 수 있었다. 일단 시간이 아시아권에서 열리는 지라 맞았으니까.
멕시코전!
전설의 명장이라 일컬어지는 차범근씨가 감독으로 내정되었고, 따라서 1승 1무 1패의 성적으로 시뮬레이션가 나와 16강 진출을 한다는 뉴스들이 언뜻 생각이 나는 정도. 하지만 아마 2002년의 붉은 함성의 시작은 프랑스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붉은악마의 등장도 이때!)
멕시코 전을 시작으로 TV앞에 앉아서 구경을 했었다. 하석주의 초반의 1점도 잠시, 전반 후에는 잠이 들어 보지 못했지만 새벽의 축구는 허무하게 져갔다. 그리고 벨기에전의 승리해도 16강은 안되었지만 피가나도 악전고투 하는 모습. 아마 그때 지금의 축구에 대한 열정이 생긴건 무언의 "감동"이 있었던 것이 밑바탕이 되었지 않나 싶다.
아마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첫 월드컵의 기억이다. 16강 실패
처음으로 본 월드컵의 마음은
"비참하지만 명예로운" 것이었다.
기억2.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
시간은 흘러 중학생이 되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개최를 한 탓인지 사람들의 열정이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불타올랐다. 열리기 전부터 많은 행사가 있었고, 신문과 방송등 매스미디어 에서는 모든것이 당연하다는 듯 축구가 앞면을 차지하곤 했다. 행사가 어떻고 팀별 분석이 어떻고 16강이 어떻고... 어느 곳에서나 16강은 화두였고 스스로를 저평가 하며 1승 1무 1패로 올라갈 것이라 위태로운 믿음을 가진 모습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아마 내 인생에 한번이 있을까 말까한 일일 것이라고. 당연하지만 표를 알아보기도 했다. 허나 그 만만치 않은 가격에서 청소년이었던 나는 가볍게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높은가격이라도 사야 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다른 생각으로 거리응원도 나갈 수 있는 사람에겐 다행이겠지 싶었다. 그래서 한번. 거리를 나가 보기로 했다.
나는 중학생이었다. 담장을 넘어 나가는 학생이 있었을 정도로 월드컵은 전 민중의 축제이기도 했다. 물론 경기시간이 학교와 겹치진 않았지만 미국전 처럼 시간이 애매한 경우가 있었고, 그래서 거리응원조차 인파로 인하여 나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용감한(?) 친구들은 학생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탈출'을 했다. 여자 남자 할거 없이 월드컵은 아마 우리들을 열정으로 이끌어 주었고, 그 응답으로 그들은 담을 너머 함성의 모임으로 갔었다.
허나 월드컵은 학교 밖 담장너머에 있을 뿐, 학교에 있던 나에겐 예외의 행사였다. 마음은 같아도 몸은 갈수 없는 것. 그랬던 기억으로 남은 게 한국/일본 월드컵이었다.
그렇게 TV속 월드컵으로 한국에서 열렸던 월드컵은 마치게 된다.
4강의 독일전과 3-4위전의 터키전을 마지막으로 말이다.
기억3. 2006년 독일 월드컵
그리고 다시 4년뒤 찾아온 독일월드컵, 이번에는 가능하게 보였다. 하다 못해 거리라도 나갈 수 있을거 같았다.
독일은 가기 힘들지라도, 여러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한 마음이 되면서 응원이 가능하리라 믿었고 그런 기대를 져버릴 수 없었다. 열정이 살아있다면 TV라도 감사히 볼 수 있을 . 것이었다
허나 세상은 이번에도
"학업"이라는 이름의 잭팟을 터트린다나 뭐라나... -_-;
그리고 나도 그 당첨자중 한명이었다. 으헣헣
그랬다. 아마 전국에 사는 특정 연령대+검정고시자들을 합쳐 55만명에 이르는 대상에겐 어떤 행사도 예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다.
왕도는 없다. 오직 학원안에 쳐박혀 있을뿐.
조삼모사
누군가에게 잊혀진 사람들은 붉은 열정도, 토고전의 승리도 볼 수가 없었다.
아마 그때의 기분을 친구의 말을 빌려 표현한다면
마른 미숫가루를 한움큼 입안에 집어넣은체 씹는 것 같다고...
"학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독일은 고사하고 거리도 불가능했다. TV도 못봤다."
(이런 저주가!)
의지 할 곳은 없었고, 듣을 수 있는 것은 단지 라디오 뿐이었다. 붉은 함성을 뒤로 하고 나와 나를 비롯한 수험생들은 학원에서 한문제라도 더 풀기위해 있었다. 허나 마음은 딴데 가있는 법. 자율학습 시간, 학원에서 있는 대다수의 남자들은 이어폰을 끼고 다녔고, 아마 그
원인의 80%는 월드컵 중계를 듣기위한 하나의 방편책이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된다.
한번은 그런적이 있었다. DMB가 있는 D모씨의 앞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다녔다. 당연히 경기. 이 작은 화면으로 보는 것도 만족을 못했지만 정말 재미있게 봤었다. 소리가 커질때쯤 바퀴벌래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자리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암튼 걸리는 몇몇 친구들은 맞으면서도 웃었다고 한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실장의 말에 의하면
그렇게 행복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봤다고(...)
토고전은 그 때문인지 기억에 남는다. 첫 국외 월드컵에서 승리였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때만큼은 학원도 예외는 아니었고 여학생들도 남학생들 같이 크지는 않았지만 같은 마음이었다. 다행히(?) 학생 관리인인 실장은 어떤 의미에서든 간에 무언의 편의를 봐주었다.
역시 월드컵 앞에는 장사가 없단 말인가...
학원가의 밤은 애처로왔다.
그런 와중에 나와 친구는 한창 경기가 열릴때쯤 옥상에 올라갔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가고싶다" 라는 것은 같은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자판기에서 콜라를 뽑아든체 휘황찬 밤에 야경이 뒤섞인 가운데 친구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날의 풍경과 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업화의 추억이었을 것이다.
상황에 대한 마음이 잘 들어나는 그림
A군 : 야.
나 : 왜.
A군 : 너도 보고싶냐?
나 : 왜 안보고 싶겠냐. 상황이 이러니 못보지.
A군 : "만약 말이야.
나 : ...?
A군 : 수능이 끝나면 월드컵 같은거 직접 보러 갈수 있을까?
친구는 나지막히 쉬다가 말했다. 아마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단 하나의 붉은 열정이 있다면 갈 수 있을지도 몰라. 정말로."
월드컵을 못본 것은 이 느낌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전 학원생이 라디오를 듣는 아름다운 추억(?)이 생겼지만 아마 어떤 형식에서든 간에 무언의 단체응원을 했던 것 같다. 라면을 서로 먹으면서 짧은 휴식시간 DMB로 구경을 하다가 시간이 되면 다시 라디오를 듣고 하는 그 아스트랄(?)함은 다시는 볼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수능이라는 거대한 헬게이트를 열는 와중에 독일월드컵은
"누군가의 함성"으 로 지나가 있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다.
16년. 4번의 월드컵
16년을 기다린 월드컵, 그리고
2010 남아프리카 월드컵이다. 아마 이번에도 위와 같은 비슷한 스토리가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엄습하였다.
"이번에도 이전과 같으면 어쩌지?"하는 와중에 보인 것은 "
다음-코카콜라 이벤트"였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이벤트는 아마도 어떤 의미에서든
"가고싶다"라는 것을 강하게 외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천우의 기회. 단 하나의 붉은 열정으로
제목으로 "단 하나의 붉은 열정으로"를 택한 것은 친구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사실 그땐 그 말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알 수 없었다. 니바효과라는 말처럼 내가 지금의 인기블로거가 된다는 것도 또 여러가지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도 4년전에는 알 수가 없었다. 허나 지금의 나에겐 취재를 위한 장비가 있고, 또 그 기회에 답할 수 있는 블로그가 있다.
진짜 입은적이 없다. 걸친적도 없고
놀라운 것인지 본인은
붉은악마티와 같은 것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들과 동 떨어진 존재였고, 또 그럴 수 밖에 없던 환경적 요인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나 자신이 그때는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여러가지 요소들로 인하여 나는 13번째 선수의 옷을 입지 못했던 것이고, 또 같이 뛰지 못한체 엔트리 선수로만 20년을 살아온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지 않을까? 블로그라는 매채를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남십자성의 인도아래 무수히 많은 별 만큼이나 1만개의 리플의 숫자만큼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라는 느낌에 확신이 섰다.
단 하나의 붉은 열정을 태울수 있도록...
미래의 6월에 굳은 미소를 지으며 살아있는 나를 보고자, 글을 쓰며 소망해본다.
취재용 장비는 다음과 같습니다.
카메라 - 펜탁스 K-7 (동영상 & 사진)
노트북 - 12인치 Aw-12 노트북 (포스팅은 이걸로 합니다.)
아이폰 - 트위터 & 요즘(어플은 이때쯤이면 나왔으리라 봅니다.)
방식
모두가 함께 즐길수 있는, TV가 아닌 것으로도 보는 월드컵
이라는 모토를 기초로 주제를 정했습니다. 제가 16년간 즐기지 못한 것처럼, 다른 분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있으신들도 있답니다. 따라서 모두가 어떤 매채로든 접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려 합니다.
일정에 대한 모든것을 나열함. 실시간으로는 트위터와 요즘으로 경기장의 분위기를 전달.
4시간 이내에 블로그에 포스팅을 완료.
저는 제 블로그에 맞는 관련 포스팅 내용으로 다룹니다.
축구가 전문분야가 아닌 이상
어줍잖은 분석은 다루지 않습니다.
월드컵 개막 전 포스팅
1.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관련된 이야기 내용.
2. IT기기(스마트폰)을 이용한 월드컵 보내는 방법 (아이폰)
3. 4년마다 열렸던 각 국가 월드컵의 트라비아 (앞으로 열릴 20회 브라질월드컵 까지)
월드컵 개막 후 포스팅
1. 모든 일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나열합니다.
2. 대회 중간은 트위터와 요즘으로 분위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다만 경기장에 Wi-fi가 없다는 조사결과가 나오면 액수가 좀 커지겠지만 하겠습니다.)
3. 경기장에서 돌아온 후 4시간 이내에 블로그에 포스팅을 완료.
4. 한국으로 돌아와서 차근차근히 중간에 있었던 트라비아나 이야기 거리 포스팅.